민지네신문-먹순여사와 달푼씨

오장육부가 타는 밤

달푼씨가 숙직을 마친 다음날 아침이면 이빨도 닦지 않고 부시시한 모습으로 씻고 밥먹기 위해 딩동소리 울리며 잠시 집에 들린다. "어솨요! 방가!"를 외치며 한쪽 뺨에 뽀뽀 쪽. "자기, 또 잠 안잤구나? 그러게 빨랑 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 했더니만..." 어젠 메뉴가 뭐였어?" "모리겠다. 내 진짜 어제밤에는 일찍 잘라꼬 캤는데 술취한 놈이 갱찰선가 묻는 전화를 연거푸 몇번씩 해대는 통에 마 잠이 깨뿌리가 할수업시 또 텔레비젼을 봤따 아이가!"

하품 찍찍 해대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진짜, 내가... 언제 한번 몰래가서 텔레비젼 줄을 싹뚝 짤라버리고 오든가 해야지 정말..." 숙직하는 날마다 달푼씨는 새벽까지 텔레비젼을 보다가 잠이 든다는거다. 뺑먹순이 아무리 말려도 되풀이되는 이 버릇이 벌써 몇 년째다. 하긴 집에선 깡통앞에 앉았느라 일년가야 진득하게 텔레비 보는 날이 없으니 오랜만에 보는 텔레비젼이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으랴만! "씻고 누워야지 그렇잖음 꽁꽁얼어 감기 걸린단" 먹순말에도 아랑곳없이 "봐라, 먹순아. 열한시 반에 깨와라." 한마디 던지고 눕자마자 코골며 잘도 잔다.

달푼씨가 잠든 사이 뺑먹순은 동당동당 도마소리 울리며 달푼씨 점심상을 차린다. 갈비찜에 김치전 된장찌개 오이무침 온갖 반찬 만들어놓고 달푼씨를 깨우지만 끄으응 돌아누우며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간지르고 꼬집고 온갖 묘기를 다 부려도 "쪼매마!"를 외친다. 사발시계 때르릉을 수십번. 겨우 일으켜세워 세수시키고 이 닦이고 식탁에 앉혀 놓으니 아직도 꿈나라를 헤맨다. 깔깔한 입에 밥을 먹는건지 밥알을 세는건지 몽롱한 정신으로 겨우 걸터앉았으니 밥맛이 있을턱 없어 옆에 앉아 요것조것 먹어보라 집어주는 먹순이 성가시다는 듯 까탈스럽다.

"갈비찜 좀 먹어봐." "찔기다!" "그럼, 김구이랑 오이무침 먹어요∼!" "김은 입천정에 붙어쌌코 오이무침은 시그럽다!" "입맛 없을땐 식초 친게 상큼하고 좋잖아! 그럼 김치찌개?" "돼지냄새 고약타!" "그럼, 돼지찌개에서 꽃향기나?" 화가 난 뺑먹순 한마디 톡 쏘아부치곤 열쇠들고 나가버린다. 지하주차장에서 벌벌떨며 시동걸고 기다리는 뺑먹순. 잠이 덜 깬 얼굴의 달푼씨를 태우고 회사로 간다. "오늘은 날씨가 조타!" 음악은 울려퍼지건만 침묵이 흐르는 자동차안.

초조한 달푼씨 양다리 달달떨며 먹순여사 눈치를 살핀다. "여보야, 내 잠을 못자서 그런가 소화가 안되가 그칸다! 내 진짜 어제는 기냥 잘라꼬 캤는데 '만두부인 속 터졌네' 하고 '오장육부가 타는 밤' 이 있는기라." "그러게, 밤새 그깐 입헤벌린 여자들 본다구 새벽녘에나 잠들었을테구... 아주 요상한 꿈까지 꾸고 신났겠구만! 하여간에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똑같다니깐... 그런거 있음 지들 집에서 마누라하고나 같이 볼것이지 왜 하필 숙직실에다 그런걸 둔대!" "그거는, 니가 몰라서 하는 소리지. 야, 그럼 마누라도 없는데 숙직하면서 뭐하노?" "뭐하긴 지들 마누라한테 오랜만에 편지래두 한 장 쓰고 평소에 못한 말 전화로 다정하게 속삭임되지... 그러니깐... 당최... 마누라한테 사랑받는 법을 몰라욧!......"

▶ 182호에 계속